IBK 스타 HOME
검색 분류
블로그 전송 카페 전송 밴드 전송 카카오스토리 전송 페이스북전송 트위터전송
기본이 곧 ‘명품’을 만든다!최봉길 세무사 법학박사
최봉길 세무사 법학박사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하였던가. 최봉길 세무사가 걸어온 발자취는 이를 방증하고 있는 듯하였다. 넉넉잖은 가정환경이나 건강상의 문제들도 세무사로 성공하겠다는 그의 꿈을 굴복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열정과 집념의 원동은 무엇이었을까? 최봉길 세무사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간절하면 이뤄진다
베스트셀러 도서 <세금은 아끼고 분쟁은 예방하는 상속의 기술>의 저자로 더 유명한 최봉길 세무사. 근 30년간, 그는 세무 업계에서 굵직굵직하고 다양한 업적을 세우며 그야말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업계에선 이미 그를 ‘명품 세무사’로 인정하고 있을 정도다. 이와 같은 수식어를 얻기까지 그는 어떤 노력들을 해왔을까? 소년 최봉길은 지독히도 가난했고 슬프게도 허약했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졸업 무렵, 빚더미에 내몰린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형편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학교를 제대로 졸업할 수 있는지조차 불확실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학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고등학교 졸업장만큼은 확보해야 했다. 그래야 부서진 가정을 다시금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3남 3녀 중 넷째지만, 손위 형제들과 누이 못지않게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이 유독 뜨거웠던 그는 가정교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서울 소재 모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런데 고3 진학을 앞두고 문제가 또 생겼다. 동기들과 축구 시합을 하던 중에 왼팔이 무참히 골절된 것이다. 이로 인한 절망감은 깊은 신경쇠약증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그는 휴학을 하게 되었다.절대적 안정과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역시나 그의 현실은 이를 허락지 않았다. 가세가 여전히 비참했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피로감이 저를 괴롭히고 있었지만, ‘포부 없는 삶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라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사설학원에서 부기(簿記)를 강의하며 복학하기 위한 수업료를 차곡차곡 저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은행원이 되리라는 목표 또한 명확해졌죠.”

복학 이후 그는 매년 가을 실시되는 금융단 공개채용 시험을 준비하며 꿈을 키웠으나, 자격 미달임을 뒤늦게야 알게 됐다. 당시에는 은행반인 학생들에게만 입행의 기회가 제공되었는데 그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 탓이었다. 이를 불합리하다고 여긴 소년 최봉길은 끊임없이 건의를 한 끝에 시험원서 얻는 데에 성공했고, 1976년 그토록 열망해 온 은행에 마침내 합격했다.

최봉길 세무사 법학박사


자양분이 된 기업은행에서의 15년
불굴의 의지와 끈기로 시작한 은행원 생활은 청년 최봉길과 그의 가족에게 더할 나위없는 활력소가 됐다. 지리멸렬했던 고난과 빈곤도 서서히 청산되어갔다. 그가 은행 근무한지 5개월쯤 됐을 때는, 군에서 제대한 작은형이 IBK기업은행에 합격하는 겹경사를 맛보기도 했다.

“형제가 한 은행에 다닌다고 주변에서 부러워하니까 부모님이 정말 자랑스러워하셨죠. 그야말로 ‘하면 된다!’라는 말을 몸소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최봉길 세무사 법학박사

하지만 그는 여기에 안주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입행 1년여 만에 미래를 위한 비전을 재설정하기로 하였다. 새로운 목표는 세무사시험에 합격하는 것이었다. 직장생활하며 공부하는 것이 녹록지는 않았지만,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업무와 관련도 없는데 그 어려운 공부를 왜 하느냐,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시선도 적잖았습니다. 실제, 시험에도 여러 차례 떨어졌으니까요. 그렇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세무사 라이센스는 제게 제2의 삶을 열어 줄 단초가 되리란 확신이 들었죠.”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지난 1980년 세무사자격을 취득했고, 10년 뒤인 1990년 5월 과감하게 세무사로 전업했기 때문이다. 이후 많은 사람이 물어 왔다. 조금 더 빨리, 아니 처음부터 세무사로 커리어를 시작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그럴 때면 그는 언제나 일각의 망설임도 없이 ‘NO!’라고 대답했다.

“15년간 은행원으로서 쌓은 경험치가 없었다면, 오늘날에 ‘종합세무컨설턴트’로 거듭나지 못했을 테니까요. 실제로, 세제에 금융을 접목해 컨설팅해줄 수 있는 세무사는 꽤 드뭅니다. 이런 측면에서 저는 유니크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금융과 세무를 두루 아우르는 이력의 소유자인 덕분에, 최봉길 세무사는 금융실명제 와 부동산실명제 실시준비단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또한 (구)월간 국세지에 <세무사 시험 예상문제>를 무려 10년간 연재했다.

최봉길 세무사 법학박사
최봉길 세무사 법학박사


공부의 신, 엘리트 조세전문가
세무사는 기장 및 조정 업무 등을 비롯하여 부동산과 회계, 세법 등도 고루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최봉길 세무사는 오래 전에 법학박사 학위까지 취득해 세무사로서의 위상을 한층 높이기도 했다. 책무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배움을 게을리 않기로 유명한 최봉길 세무사이지만, 새삼 법학박사라니! 그 열의에 감탄과 박수가 절로 터져 나왔다.

“세무도 결국 법률의 문제거든요. 법에 얽힌 세금 사건들이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 아닐 정도죠. 그러므로 밀도 있는 컨설팅을 위해서는 법학 공부 또한 필수라고 생각했습니다.”

법학박사 학위가 있는 세무사가 몇이나 있겠는가. 이러한 노력으로 최봉길 세무사는 법무법인 화우 세무고문으로 위촉되기까지 했다. 법무법인에서 외부 세무사를 고문으로 삼은 것은 그야말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국내 최초였죠. 내부에도 세법 전문 변호사는 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세법만을 아는 것과 세무, 금융, 관련법을 다각도로 아는 것은 아무래도 다른 차원이죠. 그와 같은 점이 큰 메리트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국세청의 과세전적부심사위원회와 국세심사위원회의 위원직도 역임했던 그는 ‘납세자 권리 구제’에 기여한 바로도 정평이 나있다. ‘납세자 권리 구제는 위원의 독립성·전문성·공정성이 매우 중요한 핵심요소이고, 가능하면 신속하게 처리되어 납세자와 과세권자 대부분이 위원회의 결정에 승복할 수 있어야 위원회 존재 가치가 있다(국세기본법 제55조[불복] 지방세기본법 제7장[이의신청 및 심사청구와 심판청구])’는 평소의 조세 철학을 위원 활동기간 내내 성실하게 적용한 까닭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2018년 4월부터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조세소위위원회 위원으로 있으면서 조세 개혁에도 힘을 쏟고 있다. 가업승계 전문세무사답게 2015년에는 (전)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장 조병선 원장과 사단법인 한국가족기업연구원을 설립, 가족기업들의 경영 안정 및 원활하고 성공적인 사업승계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이와 같은 공적들을 높이 평가받아 지난 3월 4일 <제53회 납세자의 날> 기념행사에서 유일하게 대통령 표창을 받는 쾌거를 거두기도 하였다. 깊은 통찰력과 혜안으로 명쾌하고 신뢰 높은 조세 솔루션을 제안하고 있는 최봉길 세무사. 그의 활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봉길 세무사 법학박사IBK기업은행의 동료로 함께 근무하며 여전히 친분을 이어오고 있는 두 사람. (왼쪽부터) 최봉길 세무사, 조병선 원장



Words 이소영 Photographs 고인순

댓글 보기



삭제하기
TOP
페이스북 블로그 유투브 인스타그램
검색하기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