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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아닌 ‘목적’으로서의개의 삶은 어디 있나
개의 삶은 어디 있나

지난해 11월 국내 개봉한 영화 <베일리 어게인>(감독 라세할스트롬)은 미국의 유머작가 W. 브루스 카메론의 소설 <도그스 퍼포스>(A Dog’s Purpose·개의 목적)를 토대로 한 드라마다. 원작소설은 52주 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화제작이다. 국내에서는 2014년 반려동물 전문 출판사인 페티앙북스에서 <내 삶의 목적>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다가, 지난해 <베일리 어게인>이라고 제목을 바꿔 개정판을 냈다.



‘베일리’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
<베일리 어게인>이나 <내 삶의 목적>이라는 변형된 제목보다 <개의 목적>이라는 원어 제목이 더 직정적(直情的)으로 다가온다. ‘개의 목적이 도대체 뭔가’ 하는 호기심도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이 소설과 영화는 모두 반려견의 환생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룬다. 전생의 기억을 간직한 채 환생을 거듭하는 주인공 개 베일리는 마음이 통하는 ‘영혼의 친구’이자 첫 주인인 이든을 만나 여느 개의 동물적 삶과는 사뭇 다른 ‘영적’인 삶을 살아간다.

개의 삶은 어디 있나

이야기는 전지적 개의 시점에서 개의 입을 통해 전개된다. 견생(犬生) 1회차 베일리는 셰퍼드 경찰견 ‘엘리’로, 소울메이트 웰시코기 ‘티노’로, 다시 떠돌이 방랑견 세인트 버나드 혼종견 ‘버디’로 성별과 이름, 직업까지 모두 다르게 태어나지만 단 하나 영혼만은 변함이 없다. 베일리가 윤회의 삶을 통해 확인하는 개의 목적은 한마디로 ‘개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즐겁게 살아.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서 구해주고, 사랑하는 이들을 핥아주고, 지나간 일로 슬픈 얼굴 하지 말고, 다가올 일로 얼굴 찌푸리지 마. 그저 지금을 사는 거야. 지금 이 순간을.” 개의 목적이란 결국 인간에게 한없이 충성스러운, 순종과 긍정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인간이 호모사피엔스, 즉 지혜로운 존재라면 개는 카니스 파밀리아리스(Canis Familiaris), 그러니까 인간에게 친숙한 존재다. 베일리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나듯 개의 존재 이유는 인간을 사랑하는 것, 인간에게 조건 없이 사랑하는 방법을 일러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베일리어게인>은 허구지만 반려동물의 삶에 대한 만만찮은 철학적 고찰의 단서를 제공한다.

특별한 운명, 소설과 영화에서의 베일리
미국은 ‘반려견 천국’이다. 최근 미국 반려동물산업협회(APPA)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가정의 68%가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키운다. 미국에서는 반려동물이 죽으면 천국에 가게 해달라며 추모예배를 부탁하는 일이 많아 ‘목사는 반려동물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만드는 교회도 늘고 있다고 한다. 소설 <도그스 퍼포스>가 출간된 후, 미국의 애견인들 사이에서 ‘베일리 앓이’ 현상이 유행처럼 번진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영화의 토대가 된 원작이 있는 경우, 우리는 은연중에 이를 의식해 서로 비교해 보게 된다. 하지만 섣부른 교차읽기는 영화에 대한 온전한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소설과 영화는 그 문법이 다르고 강조점도 다르다. 영화가 베일리와 이든으로 표상되는 개와 인간의 우정을 그린 한편의 ‘동화’라면, 소설은 보다 실제적이고 광범위한 개의 삶의 전모를 보여준다.

<베일리 어게인>에 등장하는 개, 특히 베일리는 한낱 ‘동물로서의 개’가 아니다. 영혼을 가진 개, 좀 과장하면 심오한 영적 아우라를 지닌 개다. 그러나 거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베일리라는 특별한 개의 운명,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 택한 길이다. 이는 개로서의 삶의 첫발을 뗀 어린 베일리의 말에서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의 손길을 벗어나 떠돌이로 살면 이렇게 배고프고 비실대는 꼴이 되는 것이었다.”

개의 삶은 어디 있나


개의 환생을 통한 생명의 진정한 의미
소설과 영화에 드러난 개의 목적, 혹은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다분히 인간이 의도한 것이다. 개가 인간을 이해하고 배려한다는 전제 자체가 인간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이기심이 아닌가. <베일리 어게인>에 어떤 궁극적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인간과 동물의 변함없는 우정, 전지적 화자이자 관찰자로서의 개의 시각, ‘동물을 넘어서는 동물’로서의 개의 영성…. 이런 것들은 모두 이야기를 구성하기 위한 허구적 요소에 불과하다. 자명한 것은 베일리의 경우 에서 드러나듯 생명은 신비롭고 경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개의 삶은 어디 있나
개의 삶은 어디 있나


우리는 영화를 볼 때 흔히 감독의 연출, 배우의 연기, 영상의 아름다움 등 여러 가지를 따져가며 본다. 하지만 <베일리 어게인>에서는 굳이 그런 절박한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다. ‘개의 환생’이라는 색다른 소재 외에는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일까. 다만 이 영화와 소설로 말미암아 생명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를 가졌다면 그것은 분명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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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김종면 콘텐츠랩 씨큐브 수석연구원, 전 서울신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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