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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Sider인싸, 외로울 수밖에 없다
인싸, 외로울 수밖에 없다

이제는 일상적 언어가 되어버린 ‘인싸’. 인사이더(insider)의 줄임말로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에서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부류를 일컫는다.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자신이 속한 무리 내의 사람들과 두루 알고 지내고, 자신이 속한 학교, 집단, 회사에서 열리는 행사나 소모임 등에 적극적 으로 참여하고, 무리 내에서 자신과 확실히 친하다고 볼 수 있을만한 친구 혹은 그룹이 있을 때 ‘인싸’라고 할 수 있다.



인싸와 아싸는 종이 한 장 차이, 인싸
인싸 중의 인싸로 전체 분위기를 주도하는 핵인싸, 좋아하는 아이템, 장소, 음악, 춤 앞에 이 말을 붙인 용어들까지 자연스럽게 쓰는 것을 보면 그들은 인싸가 되길 바라는게 확실하다. 인싸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능력인 ‘인싸력’으로는 자연스러움, 친화력, 센스를 꼽기도 한다. 디지털세대, 혼(혼자)세대, 밀레니엄세대, 소확행과 워라밸, 혼밥과 셀피와는 어울리지 않으니 차라리 반대인 ‘아싸’(‘아웃사이더’의 줄임말)가 더 맞을 것 같은데. 아이러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대학가에서는 ‘무리’ 자체를 거부하는 ‘아싸’가 대세였음을 생각하면 말이다.

외롭기 때문일까. 불안 때문일까.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밖에 없다는 자각 때문일까.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변해 개인화, 조각난 삶에 익숙한 세대이지만 가상의 세상 속에서만 지내기 힘들어서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전혀 새로운 것도, 별난 것도 아니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 때부터 하나의 유형으로 존재해왔다.

문제는 인싸도 아싸도 마치 옷을 갈아입듯이 유행 따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어느 것이 좋고 나쁘다고 할 수 도 없으며, 내가 원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인싸라고 모두 즐겁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도 아니고, 아싸라고 모두 우울하고 불행하고 외로운 것도 아님을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인싸는 한국사회가 낳은 욕망?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David Riesman)은 1950년 <고독한 군중(Lonely Crowd)>에서 타인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면서 ‘외부지향형’이야말로 겉으로 드러난 사교성과는 달리 내면적으로는 고립감과 불안으로 언제나 번민하는 인간들이라고 했다.

고도산업사회의 ‘고독한 군중’은 아싸가 아니라 동료나 이웃 등 또래집단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의 영향을 받아 행동하고, 타인들의 생각과 관심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그 집단에서 격리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인싸들이란 얘기다. 물론 인싸는 ‘고독한 군중’과는 다를 수 있다. 적극적으로 집단에 어울리고, 그 어울림과 친화력에 스스로 자유로움과 만족감을 낀다면.

인싸에 대한 선망과 유행이야말로 한국사회가 낳은 욕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기주의, 남을 이겨야 한다는 경쟁의식, 조직이나 또래집단에서 주류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인싸가 자신 없음을 감추려는 심리적 안정, 과거처럼 주류를 추종하는 집단 주의적인 가치관과 강요의 산물이라면 우리 사회를 갈라버리는 또 하나의 ‘경계’이고 ‘차별’에 불과할 뿐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
밀레니엄세대가 사회에 발을 내딛고 있는 지금에도 여전히 외향적, 내성적이란 이분법으로 나눠 성격으로 태도와 능력을 평가해 버리려는 우리 사회의 시대착오적 문화도 인싸의 유행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아직도 아싸보다는 인싸가 우리 사회의 이상적인 인간형이다. “남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조직에 활기를 주고 추진력 있게 일처리를 한다. 쾌활한 성격과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기대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고 일을 맡기는 입장에서도 믿음이 간다”는 식이다. 성격과 태도는 능력이 아니며, 지금 세상에는 함께 해야 할 일보다 혼자 해야 할 일이 더 중요하고 많음에도 불구하고.

인싸와 아싸 중에서 어느 쪽이 좋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누구도 어느 한쪽으로 딱 구분지울 수 없다. 인간의 성격은 그렇게 분명하고 단순하지 않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자 ‘생각하는 갈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인싸와 아싸보다는 그 중간쯤에서 상황에 따라 때론 무리에 어울리기도 하고, 때론 혼자 빠져나오기도 한다. 슬그머니 따라가는 ‘그럴싸’가 훨씬 많고 자연스러운 건지도 모른다. 이념이 꼭 진보 아니면 보수여야 할 이유가 없듯이 성격과 태도도 마찬가지다. 남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혼자서 지내길 좋아하는 사람보다 꼭 좋다고 말할 수 없다.

내가 진정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 다만 가끔은 내 안에 있는 ‘내성’이나 ‘외향’이 가슴을 박차고 나올 때, 그것으로 나 자신의 다른 모습을 확인해 보자. 억지로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거짓 웃음과 어울림으로 인싸가 된 것은 아닌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안아줄 수 있는 따뜻한 나의 가슴을 일부러 감추는 아싸가 된 것은 아닌지. 둘 다 외롭다. 우아한 와인바나 아늑한 야외 식당에서 미소를 머금고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유머 넘치는 대화를 해도, 향긋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자신의 내면과 대화를 해도.



Words 이대현
인싸, 외로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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