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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멋쟁이들의 쇼핑 성지!‘염천교 수제화 거리’의 화려한 변신
‘염천교 수제화 거리’의 화려한 변신
낡은 옷을 벗고 현대적 감각을 입은 간판 디자인이 멋스럽다
발바닥은 적당히 푹신하고, 가죽은 발에 착 감기는 수제화. 두고두고 손이 가는 덕에 누구나 한 켤레쯤 소장하고 있는 아이템이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에 수제화 명인이 모인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염천교 수제화 거리의 진가를 알리기 위한 IBK의 노력을 소개한다.


염초청(焰硝廳) 근처의 다리, 우리나라 최초의 수제화 거리가 되다
‘염천교 수제화 거리’의 시작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선 그 터가 되는 ‘염천교’는 과거 화약을 만들던 염초청(焰硝廳) 부근에 있는 다리라 하여 ‘염청교(焰廳橋)’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후에 ‘염천교’로 바뀐 까닭은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며 발음하기 쉬운 쪽이 선택된 것이다.

염천교의 본격적인 활약은 18세기부터 시작되는데, 조선의 손꼽히는 유통 명소였던 ‘칠패시장(七牌市場)’이 이곳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도 쌀, 비단, 수산물 등을 한데 모아 파는 시장이 있었는데 그중 유독 세 곳, 이현(梨峴), 종가(鍾街) 그리고 칠패시장(七牌市場)의 규모가 가장 컸다. 특히 칠패시장은 항구 가까이 위치해 전국 각지로 물건을 보내고 받기 좋았다. 개항 이후 청나라 상인부터 일본 상인까지 탐내던 상업 중심지가 바로 이곳이었다.

한동안 조선팔도의 상인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염천교는 ‘장이서는 터’로써의 소임을 마치고 잠시 모두의 기억에서 흐릿해져 갔다. 그리고 1925년, 염천교는 ‘대한민국 최초의 수제화 거리’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염천교 수제화 거리’의 화려한 변신01 - 염천교 수제화 거리에 즐비하게 늘어선 수제화 상점(개선전)

염천교 수제화 거리의 1925년, 그리고 2019년
1925년 일제강점기, 염천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제화 거리가 탄생했다. ‘염천교 수제화 거리’는 등장과 동시에 당대의 급변하는 스타일의 선두에 서서 유행을 이끌었다. 조선 시대 전국 팔도 상인이 칠패시장으로 모여들었던 것처럼, 당대의 멋쟁이는 모두 염천교 수제화 거리를 드나들었다.

역사 속 염천교 수제화 거리의 뜻깊은 활약을 기리며 서울시에서도 ‘2013년 서울미래유산’에 지정했을 정도다. 하지만, 제아무리 뛰어난 품질의 구두라도 대형제화 브랜드의 시장 점령에 맞서기는 어려웠던 탓일까? 염천교 수제화 거리는 차츰 ‘구두 좀 안다는 사람’만 알음알음 찾아오는 거리로 변해갔다.


서울미래유산 염천교 수제화 거리와 IBK의 아름다운 동행
대한민국 제화 산업의 포문을 열었던 염천교 수제화 거리. 이곳에는 지금도 45개의 점포가 신념을 지키며 최상급의 수제화를 손수 제작, 판매하고 있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이 거리의 명성을 다시 한 번 찾을 수 있게 골몰하던 IBK기업은행은 지난 3월부터 ‘염천교 수제화 거리 희망 디자인 사업’을 진행해왔다.

염천교 수제화 거리는 올해로 탄생 95년. 그 역사만큼 낡은 45개 점포의 간판을 통일감을 가진 새로운 디자인으로 교체하고 진열대도 현대적인 모습으로 바꿔, 고루한 이미지 대신 문화가 있는 거리의 이미지를 심어 주기로 한 것이다. 염천교 수제화 거리의 부활을 위해 당행은 지난 3월부터 간판을 디자인하고 현장을 점검했으며 5월부터 간판 제작 및 시공을 진행해 10월, 드디어 100m에 달하는 45개 점포에 전부 새 간판을 설치했다.

‘염천교 수제화 거리’의 화려한 변신
‘염천교 수제화 거리’의 화려한 변신02, 03 - 수제화 판매점 25개소 전면 간판 및 어닝 교체와 수제화 제작소 20개소 유리면 실사 교체 진행했다
교체전과 후의 사진

염천교 수제화 거리 간판 교체 프로젝트는 당행과 여러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함께 해 더욱 특별한 뜻을 지닌다. 현대적 감각을 입힌 간판 디자인은 재능기부의 형태로, 간판을 제작하고 유리 시트를 교체하는 등 2억 5천만 원에 달하는 제작비는 사단법인 함께만드는세상의 기부가 있어 가능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수제화 문화의 포문을 열었던 염천교 수제화 거리. 이곳이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로 우리 곁에 오래도록 남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올가을에는 염천교로 나들이를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Words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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