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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건널 한 조각의 용기, 터키에서 날아온 악마의 눈
시간을 건널 한 조각의 용기, 터키에서 날아온 악마의 눈

11월의 달력을 넘기며 ‘2019년도 가는 구나’ 실감을 할 무렵, 나이 먹음에 새삼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누구에게나 12월은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라는 무거운 고민과 함께 오기 때문일 테다. ‘복잡한 고민은 예쁜 열기구 위에서 날려 버리자’라는 마음으로 떠난 터키에서, 우연히 2020년의 나를 지켜줄 한 조각의 용기를 발견한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부터 박물관까지,
이스탄불 아야소피아 박물관

제법 쌀쌀해진 우리나라와 달리, 터키의 겨울은 그저 눅눅할뿐 큰 추위 없이 지나간다. 덕분에 겨울여행치고 트렁크의 공간은 제법 여유로운 편. 터키 여행 코스는 이스탄불 공항으로 입국해서 카파도키아, 파묵칼레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이스탄불 공항에서 출국하는 것이다. 11시간 비행 동안 틈틈이 세부 계획을 채워 넣는 사이 착륙을 위해 간이 테이블을 접어 달라는 안내가 흐르고 그렇게 이스탄불 공항과 처음 만났다.

시간을 건널 한 조각의 용기, 터키에서 날아온 악마의 눈 01 - 석양에 물든 파묵칼레까지 눈에 담아야 ‘파묵칼레 보고 왔다’고 할 법하다
시간을 건널 한 조각의 용기, 터키에서 날아온 악마의 눈 02 - 입구부터 커다란 코란 문자로 뒤덮인 아야소피아 박물관, 내부 양식은 동서양이 뒤섞여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펼쳤던 터키 여행 책자의 맨 앞장에 등장한 도시 ‘이스탄불’. 유럽 건축 양식이 돋보이는 돌마바흐체 궁전,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예레바탄 지하 궁전 사이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아야소피아 박물관’이었다. 동서양의 건축양식이 오묘하게 어우러진 박물관 내부 사진에 시선이 묶인 것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곧장 아야소피아 박물관을 찾아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관람을 시작했다.

시간을 건널 한 조각의 용기, 터키에서 날아온 악마의 눈 03 - 터키의 붉은색 국기가 펄럭이는 하늘아래 귀여운 기은센의 모습


360년 비잔틴제국의 콘스탄티누스 2세 황제 때 성당으로 지었기에 처음 얻은 이름은 ‘아야소피아 성당’. 이후 이 건축물은 3번의 큰 변화를 겪게 되는데, 큰 불로 망가진 것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통치하던 532년부터 5년에 걸쳐 개축한 것이 첫 번째다. 개축을 거친 아야소피아 성당의 규모는 어마어마해서 이후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 건축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의 타이틀을 유지할 정도였다고. 이후 오스만 제국이 들어서면서 성당 내부의 모자이크는 회벽과 코란 문자로 덧씌워졌고 성당 주변 곳곳에 이슬람 첨탑이 세워지면서 성당은 ‘이슬람 사원’으로 두 번째 변화를 맞이한다. 그리고 1935년 아야소피아 성당은 두 번의 변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1935년 ‘아야소피아 박물관’을 마지막으로 세 번의 변화를 마치고 관람객을 맞이하는 중이다. 360년부터 2019년 오늘까지 그간의 기억을 건축물 곳곳에 새긴 채 말이다.


적막한 카파도키아의 하늘 위에서 사라지는 고민들
터키 여행의 클라이맥스는 조금 일찍 찾아왔다. 푹 자며 6시간 시차를 이겨낸 여행 둘째 날, 고대하던 열기구 투어의 새벽이 밝았기 때문이다. 단언하건대 결코 부지런을 떨고자 새벽 체험을 예약한 것은 아니다. 터키 열기구 체험은 오직 새벽에만 가능한 탓에 동트기도 전인 새벽 3시에 바삐 숙소를 나서 카파도키아의 체험 장소로 향했던 것. 열기구 투어는 터키 여행의 대표 코스로 꼽히지만, 종종 궂은 날씨로 열기구를 띄우지 못해 체험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관광객이 생기기도 한다.

시간을 건널 한 조각의 용기, 터키에서 날아온 악마의 눈04 - 터키 파묵칼레의 거대한 원형 극장
시간을 건널 한 조각의 용기, 터키에서 날아온 악마의 눈05 - 해 질 무렵의 아야소피아 박물관, 규모가 워낙 커 멀리 떨어져야 전경을 담을 수 있다


터키 정부에서 당일의 날씨를 꼼꼼히 살핀 후 공식 허가를 내준 후에야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바람 없이 맑은 날을 골랐던 덕에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과 열기구에 탑승할 수 있었다. 스무 명 정도의 인원이 모두 탑승한 후 열기구를 띄울 불이 굉음과 함께 점화되고, 굉장한 열기에 놀라고 있을 무렵 기구는 천천히 하늘 위로 떠올랐다. 지상에서는 한껏 들떠 사진을 찍고 높은 목소리로 떠들며 기대를 드러내던 사람들조차 기구가 높이 떠오르자 그저 고요히, 마법 같은 순간을 만끽할 뿐이었다. 막연히 허공에 놓여있던 그 순간 터키까지 애써 짊어지고 온 모든 고민을 내려놓고 드디어 덤덤하게 2020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눈부신 목화의 성 그리고 어딜 가든 마주치는 새파란 눈
가벼워진 마음으로 남은 일정을 소화하러 이동한 곳은 파묵칼레(Pamukkale). 목화(木花, Pamuk)와 성(城, kale)이 합쳐진 말로 ‘목화의 성’이라는 이름답게 새하얀 석회질로 뒤덮인 절벽이다. 절벽의 한 면을 타고 아주 오랜 시간 흐른 석회수가 절벽 군데군데 웅덩이를 만들었고, 웅덩이 마다 고인 석회수(석회수는 최고급 온천수로 꼽힌다) 덕분에 천연 온천이 꾸려진 곳이다.

수식이 필요 없을 만큼 아름다운 경관에 고급 온천수가 더해진 덕에 파묵칼레는 로마시대부터 귀족들이 즐겨 찾는 프리미엄 온천 휴양지로 명성을 떨쳤다고. 압권은 하루 두 번 달라지는 파묵칼레 온천수의 색인데, 한낮에 에메랄드를 닮은 푸른빛이었던 온천수가 해 질 녘에는 웅덩이마다 석양빛을 가득 머금어 장관을 빚어낸다. 과거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이 아름다운 파묵칼레에 몸을 담그고 온천욕을 즐기는 혜택을 누렸지만,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후 파묵칼레 온천 체험은 불가능해졌다.

시간을 건널 한 조각의 용기, 터키에서 날아온 악마의 눈


아쉽게도 파묵칼레의 석양을 눈으로만 즐긴 후 이스탄불로 돌아와 카페에서 간단한 과일과 차를 주문해 터키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즐기던 그때. 과일 집기로 나온 이쑤시개 끝에 새파란 눈알 모양 장식이 떡 하니 얹혀있는 것을 보고 문득 그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니 저 파란 눈 장식은 터키 여행 내내 길을 걷노라면 인도 한가운데 난데없이 박혀 있기도 하고, 기념품 매장은 물론이거니와 식당 입구에 거대한 사이즈로 자리 잡고 있어 놀란 적도 있다. 파란 눈 장식품, 대체 정체가 뭘까?


작은 불행 하나쯤은 막아 주기를 바라며
혼자 티타임을 즐기는 옆 테이블 노신사에게 물어보니, 웃으며 “나자르본주(악마의 눈)”이라 답한다. 악마의 상징인 ‘악마의 눈’이 다가오는 불행이나 악한 기운을 막아줄 것으로 여겨부적처럼 특정 장소에 두거나 몸에 지닌다는 것이다. 터키 국민의 99%는 이슬람 신자이며, 이슬람은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이기에 미신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터키에 ‘악마의 눈’ 같은 부적은 얼핏 기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터키의 역사에 이묘한 조화에 대한 답이 있다.

시간을 건널 한 조각의 용기, 터키에서 날아온 악마의 눈 09 - 터키 이스탄불 탁심 스퀘어에서 셰프가 전통 터키 음식인 케밥의 고기를 자르고 있다


터키의 전신은 유목민족(튀르크족)이다. 말을 타고 활과 칼로 사냥하며 드넓은 자연에서 생활했던 탓에 일상은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로 가득했을 것이다. 불안정한 환경에 놓인 연약한 인간이 으레 그러하듯 그들 역시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위해 부적을 몸에 지니고자 했고 그렇게 악마의 눈이 탄생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셀주크 제국 창시와 함께 대거 이슬람교로 개종했지만, 그들에게 악마의 눈은 마치 토속신앙처럼 자리 잡아 이슬람과 자연스럽게 한데 어우러지고 있는 셈이다.

시간을 건널 한 조각의 용기, 터키에서 날아온 악마의 눈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저도 하나쯤 악마의 눈을 사고 싶은데 어떤 것을 사는 게 좋을까요?”라는 질문에 노신사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악마의 눈은 모두 다르게 생겼고, 어디서든 당신이 필요로 하는 그곳에 당신을 위한 악마의 눈이 있을 것’이라면서. 과연, 악마의 눈을 파는 기념품 매장 한구석에는 직접 악마의 눈을 만들고 있는 공예가를 볼 수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느 하나, 같은 모양이 없는 새파란 악마의 눈.

나에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작은 불행 하나쯤은 이 악마의 눈이 막아 달라는 마음을 담아 모두를 위한 악마의 눈을 하나씩 골라본다.



Words 김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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