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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만난 영화와 같은 인생 2막화가 민형식
화가 민형식

은퇴 후 파리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한 이가 있다. 인생은 영화처럼 살아야 한다고 했던가. 35년 동안의 미술교사 생활을 뒤로하고 과감하게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화가로 변신하고 영화 <몽마르트 파파>의 주인공이 됐다. 시니어의 도전과 열정을 담은 영화 <몽마르트 파파>의 주인공, 화가 민형식 씨를 만나 그의 즐겁고 흥미진진한 제2의 삶에 대해 들어본다.


은퇴 후 이야기가 영화가 되다
자신의 은퇴 후 삶을 찍은 영상이 영화가 된다면 어떨까. 영화 <몽마르트 파파>의 화가 민형식 씨는 영화가 개봉한 이후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평범하면서도 꾸준한 노력, 그리고 그림에 대한 열정이 그를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이끌었다. 민형식 씨는 20대 젊은 시절부터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의 화가가 되려고 꿈꿔왔다. 파리는 유명한 작가들이 모였던 예술의 도시로 화가들이 교류했던 곳이자 명화들이 탄생했던 도시인 만큼 민형식 씨가 더욱 선망했던 도시였다. “파리를 구한 콜티츠 장군의 일화가 유명하잖아요. 히틀러가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콜티츠가 파리의 예술·문화를 지키기 위해 거짓 보고를 했죠. 그처럼 파리란 모두에게 예술적으로 특별한 의미로 기억되는 장소인 것 같아요.”

예술의 도시 파리로 떠나려고 했던 민형식 씨의 도전은 쉽지 않았다. “젊었을 적에는 프랑스에 소르본 미술대학으로 유학을 가려고 준비하기도 했어요.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미술 교사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니 쳇바퀴처럼 도는 삶을 살게 되더라고요. 아내와 신혼여행을 프랑스 파리로 가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가지 못했어요.”

35년 동안 미술 교사로 살아오면서 늘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일. 몽마르트르 화가가 된다고 했을 때 모두들 민형식 씨의 말을 믿지 않았다. 사람들의 코웃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보란 듯이 파리로 떠나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큰아들인 민병우 영화감독의 도움으로 파리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으며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퇴직 후 6개월 동안 프랑스 학원도 다니고,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 파리 시청에 허가를 받았고, 매일 체력을 길렀어요.” 드디어 준비가 되었다 싶었던, 2017년도 12월. 민형식 씨는 캔버스를 챙겨서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화가 민형식01 - 몽마르트르 언덕에 가지고 갔던 캔버스와 작업 도구

파리의 낭만과 화가로서의 삶
미술 교사로 살았던 때에는 미술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발굴하고 함께 교류하는 일이 좋았다. 하지만 교사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른 것도 사실이다. 그때와 비교하자면 퇴직을 하고 나서는 자유분방해졌다. 그럼에도 문득, 파리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면서도 아이들이 떠올랐다고 한다. “멋진 작품이 가득한 미술관에 학생들을 데려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릴 때부터 이런 그림을 보여주고 미술교육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형식 씨는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현지인과 어울리며 생활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언어의 장벽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프랑스 문화에 금세 젖어 들었다. 민주주의와 혁명의 도시인 만큼 몽마르트르를 지키려는 화가들의 모습도 인상 깊었다. 몽마르트르 언덕의 화가들이 예술가의 권익을 위해 목소리를 높일 땐 민형식 씨도 화가의 자격으로 함께 하기도 했다.

“프랑스어로 현지인과 대화를 했던 일이 좋았어요. 제가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면 아들이 옆에서 영상을 찍고 있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제 옆자리에 있던 화가가 한국말로 “아빠”하고 저를 불렀어요.(웃음) 간단한 한국말로 저에게 인사를 하면 저는 그들에게 간단한 프랑스어로 대답했죠.” 파리의 풍경을 화폭에 옮겨 담고, 파리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림을 그리던 추운 날 동료들과 와인을 따뜻하게 데워먹었던 기억도 잊지 못한다. 파리에 대한 좋았던 기억 덕분에 민형식 씨는 다시 몽마르트르 언덕을 갈 예정이다. 파리의 낭만을 흠뻑 느끼며 그림을 그렸던 일은 그가 오랜 시간 꿈꿨던 낭만이자 행복했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2017년에는 한 달 동안 몽마르트르 언덕의 화가로 등록했어요. 다음에 신청을 하면 1년 동안 허가를 받게 되죠. 아내와 함께 떠날 예정이에요. 물론 아내가 같이 가겠다고 해야 하지만요.(웃음)”

화가 민형식02 - 몽마르트르 언덕의 사크레쾨르 성당 그림

아름다운 색채로 희망을 그리는 화가
파리로 떠난 민형식 씨 곁에는 아버지의 영상을 카메라에 담는 아들 민병우 감독이 있었다. “아들이 제가 퇴직할 때 마지막 수업을 하는 장면을 영상에 담더니 파리를 가기 위해 준비하고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영상으로 찍더라고요. 그러더니 영화로 개봉했어요. 영화감독이었던 아들이 연출을 잘해서인지 영화사의 러브콜을 받게 되었죠. 영화로 나올 줄 알았으면 옷도 더 잘 입고, 좋은 모습만 보여줬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죠.(웃음) 물론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아서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긴 것 같아요.”

화가 민형식03 - 화가 민형식 씨와 아들 민병우 영화감독
영화가 개봉한 이후 화가 민형식 씨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물었다. “영화가 개봉한 후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시사회를 하면서 영화배우가 된 듯한 느낌도 들기도 했어요. 주위에서 그러더군요. 제가 은퇴 후에 누구보다도 가장 화려한 삶을 살고 있다고요. 하지만 저는 은퇴 전과 같은 삶을 살고 있어요. 제 전공은 그림 그리는 일이니 더욱더 그림에 충실하자는 마음을 가졌어요.”

화가 민형식04 - 영화 <몽마르트 파파>의 메인 포스터
화가 민형식
화가 민형식
화가 민형식

영화 개봉과 더불어 서울에서 몽마르트르에서 그렸던 그림을 모아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2020년이 되고 1월 서울 성수동 다락스페이스에서 그리고 이어서 충무아트센터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때는 가슴 벅차게 기뻤어요. 물론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그림 그릴 때와는 비교가 안 되지만요.”

영화를 보고 전시회에 찾아온 사람들, ‘은퇴 후 인생에 용기를 얻었다’하는 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30년 전에 가르쳤던 제자가 찾아왔고, 전라도 진안에서 그림을 보기 위해 기차를 타고 온 사람을 만났다. 서울에 사는 오랜 친구들과 함께 했던 뜻깊은 만남도 인상깊었고, 또 어느 교수님은 자신의 무료한 삶 때문에 찾아보았던 영화 <몽마르트 파파>를 보고 영업용 택시를 운전해서 찾아온 재밌는 일화도 있었다.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화가 민형식. 그는 오는 3월에 여수 마띠유 호텔 더마스 갤러리에서 열릴 초대전을 준비하고 있다. 몽마르트르를 그렸던 마음으로 여수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서 스페인, 이탈리아, 체코 등등 유럽 곳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쿠바의 아름다운 색채를 화폭에 담아볼 계획이다.

화가 민형식05 - 3월 여수 전시회를 준비하는 화가 민형식 씨
그는 ‘아름다운 은퇴’란 거창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평소에 마음속에 키웠던 작은 소망이 자그마한 싹처럼 서서히 자라고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삶이 아름다운 은퇴죠.”라며 말했다. 화가 민형식의 그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 <몽마르트 파파>가 화가 민형식의 시작을 담았다면 그림은 비로소 아름다운 그의 꿈을 완성시킬 것이다. 시니어들에게 용기가 되고, 뜨거운 열정을 불어넣을 수 있는 삶. 화가 민형식 씨의 아름다운 은퇴 이야기가 색색의 예술 작품으로 남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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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이성주 Photographs. 고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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