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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를 추억하며지나간 옛역사의 흔적을 찾다
지나간 옛역사의 흔적을 찾다

서울의 역사는 6백 년, 아니 한성백제의 역사까지 2천 년이다. 서울에서 지나간 옛 역사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궁궐에 가서야 조선의 냄새를 맡을 수 있고, 풍납토성에 가서야 백제를 조금 추억할 뿐이다. 그래서 궁궐에서는 복원을 통해서 옛 흔적을 만들어가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조선식 현대건축물’일 뿐이다. 그러면 을지로는 어떠한가? IBK 사거리에서 역사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IBK기업은행 본점이 들어서기 전에 있었던 수많은 인쇄소는 인현동으로 옮겨간 지 오래고, 동양척식주식회사나 제중원도 거대한 금융기관으로 그 모습을 대체했다. 나석주 열사도, 이회영 선생도 그들을 기리는 동상만이 치열했던 삶을 소환할 뿐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해방과 6.25전쟁 이후에 건축된 수많은 건물이 아직도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근대 서울의 모습을 추억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지금 IBK기업은행이 위치한 이 을지로의 모습을 앞으로 10년, 20년, 아니 백년 후에도 볼 수 있을까?


지나간 옛역사의 흔적을 찾다
지나간 옛역사의 흔적을 찾다

근대 을지로의 모습들
약재상이 모여 한약 냄새 폴폴 나는 이 거리가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식민지 시기다. 청계천 이남, 남촌이라 불리며 혼마치, 메이지정과 ‘경성의 월스트리트’로 명성을 날리던 이곳이 지금과 같은 지형으로 변화된 것은 6.25전쟁 이후다.

서울의 모습은 폭격과 퇴각하는 북한군의 방화에 의해서 대부분 파괴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유적이 가득한 종로보다도 청계천 이남이 주로 공격 대상이었다. 그중에서도 을지로에서 훼손된 건물은 40%가 넘어 서울에서 가장 참혹했다. 아마도 잿더미라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을지로 3가의 상가들은 서울을 재건하기 위해 들어선 조명과 타일도기, 전기, 공구, 가구 등 특성화된 거리로 자연스럽게 조성되었다. 전쟁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의 주요 간선도로변에 당시로서는 고층인 4, 5층짜리 건물을 많이 짓도록 하였다. 그 이면의 낙후된 주택가에는 간선도로변 상가에서 파는 물건들을 생산하는 공장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며 을지로만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지나간 옛역사의 흔적을 찾다


수많은 최초의 흔적들
을지로에는 유독 우리나라에서 최초라고 불리는 수식어들이 많다. 을지로도시탐방 프로젝트의 해설사는 “우리나라 최초로 차도와 인도가 구분된 거리가 을지로였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주유소도 이곳에 존재했었다”라고 한다. 1930년대 개장하여 80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송림 수제화>에서 국내 최초로 등산화를 만들었고, 최초로 생맥주를 팔았던 도 노가리 골목의 효시가 되었다.

또 을지로 전성기에는 선풍기, 냉장고와 같은 최초의 시제품들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세계의 기운이 모이다’는 뜻을 가진 세운상가도 을지로에 있는데,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필자가 학교에 다닐 때 세운상가에서는 로봇태권브이는 물론이고 탱크며 비행기, 잠수함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정말 이곳에는 못 만드는 것이 없어서 ‘미국에 나사(NASA)가 있다면 서울에는 세운상가가 있다’고 했을 정도였다.


노포(오래된 점포)와 노가리를 기억하며
전쟁으로 폐허된 서울을 산업의 중심지로 만든 사람들은 을지로의 장인들이었다. 새벽부터 공구상가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도로 뒤의 공장에서는 도면을 보고 즉석에서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자들과 장인들이 넘쳐났다. 그들이 즐겨 찾던 음식점들이 지금은 미식가들의 성지가 되었다. <조선옥>, <을지면옥>, <안동장>, <안성집>, <전주옥>, <문화옥>, <우래옥>, <양미옥> 등 열거하기도 벅찰 정도다.

IBK 사거리에서 시작해 을지로3가역에 이르러 노포가 즐비한 이곳을 걷노라면 지난 시절, 아버지들의 낭만이 생각난다. 고단한 삶의 자리를 뒤로하고 고기 한 조각과 술 한 모금의 위로를 얻기 위해 이곳을 찾았던 우리의 아버지와 형님들... 월급봉투를 받아 주머니가 두둑하면 <조선옥>에서 소갈비 한 대 뜯고 입가심으로 <을지면옥>에서 그 심심한 육수에 고명으로 나온 계란 노른자를 으깨어 시원한 물냉면을 들이켰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곳이 노가리 골목이 되었다. 아버지와 형님들이 찾았던 이곳을 지금은 갈 곳 없는 청춘들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고기 한 점과 독한 소주 한 잔이, 천 원짜리 노가리와 3천 원짜리 500CC 한 잔으로 대체된 것이다. 전후복구시절 등골이 휘어진 선배들이 이 골목을 즐겨 찾았다면 취업과 내 집 마련이 까마득한 젊은이들은 천 원짜리 노가리를 씹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세월 따라 변해가도 과거는 남는다
을지로를 걷노라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 서울의 지나간 100년의 모습을 추억하게 된다. 적산가옥(적의 재산)이라 불리는 일제 강점기의 주택을 보며 지난날 우리 민족의 고달픈 모습이 상상 속에 그려진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지었다는 을지로2가의 상가 건물은 6.25전쟁 이후 산업화 시기를 겪은 우리 아버지의 초상이다. 아직도 을지로 건물에는 ‘빌딩’이 아닌 ‘삘딍’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각기 다른 모습의 정초석(건물의 정초식 때 건물의 기초 부분에 설치하는 돌로 기공 연월일을 새긴다)이 수두룩하다.

다행히 이 지역을 살리려는 젊은 예술가가 속속 들어와서 개성 있는 예술세계를 뽐내고 있지만 시대를 간직한 이 지역의 다양한 풍경이 없어진다고 하니, 아쉬움이 남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지금 보고 있는 이 지역의 건물들, 이 손 글씨 간판들이 사라진다니... 오늘도 부지런히 IBK기업은행 주변을 서성이며 눈으로 새기고 지금의 모습을 핸드폰으로 찍어두며 기억에 담아야겠다.


Words. 한선생 Photographs. 문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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